냉장고가 식재료를 알아보고 세탁건조기가 옷감 상태에 맞춰 코스를 고른다. 올해 가전 신제품에서 ‘AI’라는 글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막상 구매 단계에 들어가면 질문은 달라진다. 이 기능이 우리 집에서 얼마나 자주 쓰일지, 인터넷이나 제조사 계정이 없어도 작동하는지, 몇 년 뒤에도 같은 기능을 쓸 수 있는지가 가격표보다 오래 남는다.
10월 13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KES 2026에는 500개 회사가 1,100개 부스로 참가한다. KES 2026 공식 안내는 AI 가전과 온디바이스 AI, AI 보안·프라이버시를 주요 전시 분야로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냉장고·세탁건조기·스마트홈·가전 구독을 전면에 내놓았다. 전시장에서 눈에 띄는 기능이 우리 집에 맞는지는 따로 판단해야 한다.
Samsung Newsroom Korea같은 AI라도 냉장고와 세탁건조기가 하는 일은 다르다
삼성전자 발표에 나온 AI 푸드매니저는 냉장고 내부 카메라로 식재료를 인식하고 관리한다. 비스포크 AI 콤보의 AI 맞춤+는 세탁물 상태를 감지해 세탁 강도와 건조 온도를 설정한다. TV의 비전 AI 컴패니언은 대화를 바탕으로 콘텐츠 정보를 안내한다. 모두 AI라는 이름을 쓰지만 카메라 인식, 센서 제어, 대화형 서비스처럼 맡은 일이 서로 다르다.
기능 이름만 비교하면 이 차이가 가려진다. 냉장고 안을 자주 확인하는 집이라면 식재료 인식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세탁물을 한꺼번에 넣고 코스를 매번 고민했다면 자동 감지 덕분에 코스를 고르는 손이 덜 간다. 반대로 냉장고 화면을 거의 쓰지 않거나 세탁물을 소재별로 직접 나누는 사람에게는 AI 기능보다 용량, 설치 공간, 소비전력과 기본 성능이 선택을 더 크게 좌우할 수 있다.
LG전자 뉴스룸LG전자 발표는 가전 한 대의 자동 기능보다 더 넓은 연결을 보여 준다. AI홈 허브 LG 씽큐 온으로 모듈러 주택과 차량을 잇고, 집에서 차량의 오븐을 예열하거나 차량에서 집 안 가전을 확인하는 장면을 소개했다. 이런 연결 기능은 편리함과 함께 계정, 네트워크, 앱, 호환 기기라는 조건을 더한다. 그래서 제품 한 대의 사양표만 봐서는 사용 조건을 모두 알기 어렵다.
인터넷이 끊겼을 때 남는 기능을 물어보자
AI 기능을 확인할 때는 제품에서 바로 처리하는 일과 계정·앱·클라우드를 거치는 일을 나눠 볼 필요가 있다. 전원이 들어오면 기본 세탁과 냉각은 가능한지, 원격 제어와 추천 기능만 멈추는지, 제조사 계정에서 로그아웃하면 어떤 메뉴를 쓸 수 없는지 제품별 설명서와 지원 조건에서 확인해야 한다. ‘AI 지원’이라는 문구만으로는 이 경계를 알 수 없다.

매장에서는 화려한 자동 코스보다 연결을 하나씩 끊어 보는 질문이 유용하다. 와이파이가 없을 때, 휴대폰을 바꿨을 때, 가족이 서로 다른 운영체제를 쓸 때, 앱 서비스가 달라졌을 때 남는 기능을 확인하는 식이다. 음성·영상·식재료 같은 데이터가 수집된다면 저장 위치와 삭제 방법도 함께 물어야 한다. 답을 바로 확인하기 어렵다면 구매 전에 제품 설명서와 개인정보 처리 안내를 다시 보는 편이 안전하다.
AI 가전의 값어치는 기능 수보다 내가 반복하는 집안일 하나를 실제로 줄여 주는지에서 드러난다.
구독료에는 제품값 외의 조건이 붙는다
삼성전자는 KES 2026에서 배송·설치·케어를 묶은 삼성 AI 구독을, LG전자는 냉동얼음정수기와 워시콤보 등을 포함한 구독 & 케어 공간을 소개했다. 구독은 초기 지출을 나누고 관리를 맡길 수 있는 선택지다. 다만 월 납부액만 보면 총비용과 계약 조건을 놓치기 쉽다.
식재료 인식 냉장고는 화면보다 생활 습관을 먼저 본다
삼성 Bespoke AI 패밀리허브 4도어 864L RM90H91B1W는 AI 푸드매니저와 대형 화면을 갖춘 제품이다. KES 발표에서 소개한 식재료 인식 기능을 실제 판매 모델의 사양과 설치 조건까지 이어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 다만 냉장고 안의 재료를 자주 기록하거나 화면을 활용할 집이 아니라면, 같은 예산에서 용량과 냉각 방식에 더 무게를 두는 선택도 가능하다.
이 제품을 볼 때는 ‘냉장고가 무엇을 인식하는가’와 ‘내가 그 기록을 실제로 확인하는가’를 따로 물어야 한다. 인식 대상과 조건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사람이 직접 수정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화면과 앱을 쓰지 않는다면 프리미엄 기능에 지불하는 금액이 기본 냉장 성능을 위한 것인지 다시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세탁건조기는 AI보다 설치와 한 번에 말리는 양이 먼저다
LG 트롬 AI 오브제컬렉션 워시콤보 FC2521SX6C는 세탁 25kg, 건조 21kg 용량의 올인원 제품이다. 공식 제품 설명은 세탁물의 무게와 재질, 오염도를 감지해 세탁 모션과 세제량, 헹굼 횟수를 조절한다고 안내한다. 매번 코스를 고르기 어렵거나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기는 일을 줄이고 싶은 집이라면 기능의 목적이 분명하다.
올인원 제품은 세탁물을 옮기는 수고를 줄이지만 세탁 용량과 건조 용량이 같지는 않다. 최대 세탁량을 채운 날에도 한 번에 건조할 수 있는지, 필터를 꺼낼 공간이 나오는지, 자주 입는 옷감에 자동 코스가 맞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이 세 조건이 맞지 않으면 AI 감지 기능보다 빨래를 나누고 제품 앞 공간을 비우는 일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매장에서 다섯 장면만 확인해도 선택이 쉬워진다
다섯 가지를 모두 시연하기 어렵다면 설명서와 계약서에서 확인해도 된다. 이 항목을 확인하면 어떤 기능이 제품 안에서 끝나고 어떤 기능이 계정과 서비스에 기대는지 드러난다. 같은 AI 가전이라도 가족 수, 주거 형태, 네트워크 환경과 집안일 습관에 따라 체감 가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내가 고른다면 AI 기능의 개수보다 일주일에 몇 번 쓸 기능인지부터 적어 보겠다. 인터넷이 끊겨도 기본 기능이 남고, 구독을 중단해도 제품의 쓸모가 크게 줄지 않으며, 자동화가 반복되는 집안일 하나를 분명히 덜어 준다면 추가 비용을 검토할 이유가 있다. 반대로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 어렵다면 화려한 이름을 좇기보다 설치·용량·효율과 수리 조건이 맞는 모델을 고르는 쪽이 오래 쓰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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